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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수영장의 한 청년과 김치
    신변잡기/독일생활 2024. 1. 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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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제목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것이다. 

    일단 나는 수영연습을 하고 있다. 함부르크에서 운영하는 어떤 수영장에 등록해서 매일매일 가는 클럽에 가입이 되어있다. 뭐 피트니스 같은 느낌이다. 한국과는 약간 다르게 구조요원(직원)만 상주하고 코스가 있을 때만 강사가 온다. 코스도 굉장히 적은 것 같은 느낌..? 여하튼 지금 다니는 곳은 새로 지어져서 쾌적하고 좋다. 
    수영을 꽤 자주 가면 계속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으나 나의 시간은 대단히 정해져 있지 않고, 웬만큼 독보적이지 않고서야 수모와 수경을 쓰면 거의 비슷해 보이기에... 딱 한 분을 제외하고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나는 좀 기억에 잘 남을 것 같기도 한 게 수영복 색이 다양하고 가장 특별한 것은 내가 아시안이라는 점이겠지. 

    오늘도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 즈음 수영장에 도착했다. 사이드턴과 플립턴을 연습할 생각으로 사람이 최대한 없는 때를 노렸지 후훗. 25m는 3개의 레인이 있는데 중간에 한 레인에만 배영, 접영을 원을 그리며 도는 곳이고 그 외 양 옆의 두 곳은 연습하거나 그냥 노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실 중간이라도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으면 나는 그냥 들어가서 왔다 갔다 수영을 연습한다. 한 네다섯 번 정도 돌았을까 숨을 고르며 먼곳을 응시하는데 옆에서 안녕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영장은 몸을 많이 가리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곳이라는 점 때문에 나는 한 사람에게 시선을 오래 두는 것을 지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고 또 내가 그런 시선을 받기 싫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생각은 젠더권력과 관계가 있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을 계속 쳐다보는 건 운동하는 당사자에게 조금 민망한 일일 것 같기도 하여서. 

    돌아본 곳에는 그냥 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물미역 머리의 청년 (그는 수모가 없었다)이 있었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인사하고 싶었다며 했잖아... 점심 쉬는 시간이라서 왔느냐는 둥 나중에 통성명을 하는데 굳이 굳이... 내가 생각했던 레퍼토리가 시작 되었다. "나래"라는 내 이름을 말했다. 실수였다. 원래는 졸리라고 한다 R발음을 못해 계속 물어보는 것도 귀찮고, 계속 기억 못 해서 이름이 뭐더라 하는 상황도 피할 수 있고. '내 이름은 말이야 요하네스, 막시밀리안, 카리나 등등보다 쉬운 단 두 음절의 나. 래 라고....'

    여하튼 레인의 끝에 선 나를 두 번이나 돌려세운 이 물미역머리의 청년은 음음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내가 "왜?" 하고 물으니 어떤 뜻인지 추측해 보는 중이라는 것이다. '나는 너의 생각을 안다. 그냥 내가 어디서 온 지가 물어보고 싶었겠지.' 독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살면 이런 피로감이 있다. 한 두어 번 얘기해 주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보는 사람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면 여기에서 잘 녹아 살고 싶어 독일어도 공부하고 문화와 정치도 공부하는 나는 계속해서 다른 생김새 색출 작업을 당하는 것만 느낌이 든다. 그래서 대답해 준다고 치면 또 똑같은 레퍼토리다. 음식이나 가수 얘기 혹은 북한얘기... 지겹다... 나 참.. "네가 나의 언어를 하지 않고서는 내 이름의 뜻을 어떻게 추측하겠어?" 하니 그제야 물어본다 어떤 언어냐고. 옳다구나.

    "그럴 줄 알았어! 한국사람인 것 같았어! 김치가 한국 것 맞지? 나 며칠 전에 김치를 만들었어."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기특해할지도 모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김치를 못 먹는다고..... 난 김치가 싫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점심시간 이후 학교가 끝날 때까지 급식판을 앞에다 두고 창피를 당하던 그런 한국인이란 말이다... 그리고 너희들만의 재미있는 아시안의 국가 맞추기 게임 같은 것에 반응해 줄 마음이라곤 없으니 저리 가란 말이야...  공격과 같은 질문, 그리고 칭찬을 표방한 평가를 쏟아 붓고는 "나중에 우리 더 얘기하자, 나 연습할게" 하며 손의 패들을 고쳐 끼곤 슝하고 물살을 가르며 사라진다. 나는 너와 더 얘기할 생각이 없어.. 더 이상 나를 돌려세우지 말아...

    얘기를 시도하는 이 친구의 용기는 가상했지만, 독일에 사는 아시안으론 그냥 피로할 따름이었다. 그냥 네가 보는 수영 유튜브, 참고하는 블로그나 패들을 쓰면 좋은 점이라던지 얼마나 오래 연습했는지 그냥 그런 얘기만 하면 안 될까. 나와는 어쩌면 관련이 없는 김치 이야기나 그 후에 이어질 이야기도 그다지 흥미로울 것 같지 않아 나는 다른 레인으로 이동했다. 뭐 중간레인이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것이라 턴 연습을 하고 싶어 옮긴 이유도 있지만. 내가 너무 예민한걸까, 이런 인종구성의 사회에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겠지. 나는 더 초연히 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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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IE 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