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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 아마도 카스일 거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어울려서
비밀스럽게 미성년자들을 받아주던 그 술집에서 마신 술은. 아마도 카스와 시원소주가 아니었을까? 맥주의 맛에 대해 적으려다 갑자기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 이것은 절대 내가 취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겨우 세 모금 마셨는걸. 중학생 때 그 폭탄주를 마시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장면전환이 너무 느려지는 그런 이상한 감각을 완전히 취했구나, 혹은 내가 아닌 나의 상태가 되는구나라고 착각한 (진실 일지도..) 나는 그 후 25살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 후는 읽는 분들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맥주는 20대 중 후반이 넘어가면서 까지도 쏟고 제대로 닦지 않으면 펍 바닥에 붙어 고약한 냄새나 풍기는 술도 물도 아닌 것쯤으로 생각했다. 맥주에 대한 생각은 시드니에서 VB를 마시며 약간 바뀌고 최종보스 옥토버 페스트의 나라에 와서 완전히 바뀌게 됐다.나는 맥주의 나라에 살고 있다. 그래서 맥주의 종류는 아주아주 다양하고, 에너지 맥주 (카페인이 들어간), 자주 마시는 상큼한 레몬 맥주 라들러 (Radler, 함부르크에선 Alsterwasser 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 가서 실수로 말하니 못 알아듣더라), 파올라 너로 유명한 밀맥주는 물론이거니와 요즘은 당연히 모던한 IPA도 여러 양조장에서 빚는다. 독일은 거의 도시별로 최소 하나쯤의 양조장을 가지고 있는 다多 양조장 보유국이다. 함부르크의 내가 아는 양조장은 Ratcherrn이라는 곳. 여기도 여러 맥주를 시음해 볼 수 있게 테이스팅 플레이트를 판매하거나 맥주에 어울리는 음식을 파는 Braugasthaus(브류어리 + 게스트 하우스)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은 Altes Mädchen. 함부르크에 혹시 여행 온다면 꼭 가 보시기를. 저번 해에 먹었던 이곳의 생선요리가 내가 시킨 맥주와의 조합이 아주 그만이었다.
지금 제일 좋아하는 주류는 아마 맥주가 아닐까 싶다. 맥주는 그렇게 도수가 높지도 않고 (높은 것도 물론 있지만), 청량감이 있으며,심지어 물 대신 마시기도 하고ㅋㅋㅋ, 고소하고, 맥주의 주원료 중 하나인 홉의 향은 아주 다양해 사실 이 청량감 있고 고소한 음료를 취향에 따라 과일향, 허브향, 꽃향, 바나나향 등등 골라가며 마실 수 있다... 이러니 맥주가 이곳에서 왜 이렇게 사랑을 받는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위에도 언급했듯 라들러라는 맥주는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섞은 종류인데 레모네이드와 섞었기에 도수는 반절로 낮다. 라들러는 "여자들이나 마시는 것"이라는 별명으로 여기서도 저기서도 여성의 전유물은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반려인과 내가 레스토랑에 가면 저쪽이 시키는 것이 라들러이고 나는 필스너다. 그렇다면 역시 큰 일은 여성인 내가 한다 이렇게 해석되어야 하는 걸까? 여하튼 라들러는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아주 깜찍한 녀석이다. 여름날 그것 한병들고 알스터 호수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만끽하는 시간은 필스너나 다른 맥주가 줄 수 없는 상큼, 여름 그 자체일 것이다. 또 운동하거나 샤워 후 톡 하고 뚜껑을 까고 꼴깍꼴깍하고 넘기는 그 세 모금의 시원 쌉싸름한 맥주의 맛은 그 어떤 액체도 줄 수 없는 감각일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위와 체구가 작고 간이 알코올을 잘 해독하지 못하므로 많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없는데... (분하다) 그래서 다양한 맥주를 사 맛을 보는 것이 맥주를 즐기는 방법이 되었다. 오늘은 어떤 종류를 마셔볼까... 대단한 미식가이거나 맛을 구별하지는 못하지만 취향 같은 건 모두에게나 있는 것이니까. 그냥 심심할 때 한 잔 두 잔 마시는 맥주는 라거, 필스너 종류이고 어떤 향을 느끼고 싶을 때는 밀맥주나 에일을 마신다. 전자는 안주가 조금 세도 괜찮고 후자는 안주가 세지 않은 것들 거의 칩스나 견과류 같은 것과 같이 마시게 된다. 하지만 이렇다 해도 맥주는 짧은 시간 안에 아주 많이 섭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이유는 탄산과 물 때문에 금방 배가 불러지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독일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이유를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맛있는 맥주가 많은데 굳이 우리가 대단한 음식을 만들 필요가 있어? 소시지, 감자, 고깃덩어리랑 먹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게 해 주는데!"요 근래에 Rothaus의 밀맥주를 마시며 원래는 좋아하지 않던 밀맥주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북독일엔 많은 슈퍼마켓에 입점이 되어있지 않다. 오늘은 한번 에데카(밀맥이 있는 슈퍼마켓)에 밀맥주 사냥을 나가볼까. 흠... 맥주가 있으므로 독일 너 노맛국에서 유맛..? 아냐.. 그래도 너흰 노맛국이고 맥주는 따로 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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