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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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겠거니.신변잡기/독일생활 2024. 11. 28. 08:58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잠시 갰다가 또다시 내린다. 초록이 많은 집 주면의 흙은 질퍽하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이 깔린 도로는 크고 작은 웅덩이가 많다. 비와 추위를 막아줄 크고 두툼한 점퍼를 입고도 하루종일 외로웠다.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사실은 자라온 환경에 따라 너무 다른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어서.새로 시작한 학업은 예상한 스트레스로 잔잔히 곁에 머무른다. 이십 대 초반에 알고자 했던 행복의 정도(正道)는 고사하고 사는 이유만 알아도 고맙겠지만 여전히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오리무중이다. 얼마나 얕은지 알 수 없는 웅덩이 같은 속이 돼서 집에 와 앉았다. 오는 길엔 또 오지 않아서 빌려온 우산이 미웠는데 다시 비가 온다.우리 집은 꼭대기 층이라 부엌의 경사진 창에 부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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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루이지애나 미술관신변잡기/독일생활 2024. 3. 18. 20:22
누가 이 미술관을 가장 아름답다 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을 다녀왔다. 그 전에, 밤새 먹은 술과 거의 사기에 가까운 숙박을 달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코펜하겐 커피는 독일에 "코펜하겐 랩"이라는 큰 카페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아주 많은 이야기는 없지만, 사실 그 콩을 재배하는 지역이 덴마크는 아니므로 식민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들은 사실 노예무역으로 유명했다. 다들 잊어버리고 싶은 역사지만) 숙소는 최악이였지만, 위치는 꽤 좋아서 주변에 많은 카페와 바가 있었다. https://originalcoffee.dk Forside - Original Coffee Vi har nøje udvalgt velsmagende kaffer fra hele verden. Ab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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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코펜하겐신변잡기/독일생활 2024. 3. 18. 18:49
봄이 왔고, 우울이라는 놈이 찾아와 도저히 떨어져 나갈 생각을 안 했다. 내 우울의 특징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를 놈에게 도둑질당하는 것이다. 걱정하던 반려인이 코펜하겐 숙박페이지에서 여행가자고 왓츠앱이 왔다. 고맙고 또 미안해서 한바탕 울고. 우리는 차로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약 4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그전에도 가 볼만했는데, 반려인은 같은 유럽 여행에 크게 관심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먹고 사니즘에 치여 이렇게 늦어졌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지만, 우리는 그냥 고속도로를 선택 했다. 담엔 배를 타고 가 볼지도 … 이 다리는 무지하게 길고 주변이 아름다운데 통행비는 유로로 36유로 정도 한다. (패리는 50유로 정도) 웹사이트에서 몇 달 전에 구매하면 꽤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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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잡하게신변잡기 2024. 2. 20. 04:54
이반지하님의 말, 예술 추잡하게 하세요.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예술만 남지 않도록. 이 말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할 수 없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힘에 부쳐서 못할 것 같은데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갖는 희망 같은 것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한편으론 희망을 갖는 자신을 믿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아주 힘든 일이다. 어제의 공연이 끝나고 허무의 감정이 계절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에 하고 온 수영은 소용이 없는지 짜증과 우울이 밀려와 집을 나섰다. 비가오는 늘 그런 함부르크의 날. 뛰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냥 나갔는데, 차라리 가볍게 입고 나와서 뛸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은 컴컴하고 축축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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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발렌타인의 풍경신변잡기 2024. 2. 15. 02:00
아침부터 반려인의 물음에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꽃이 좋아 식물이 좋아? 맘속으로 생각했다 ’식물이 좋긴 한데 굳이 내가 써서 사 오라는 걸 사 왔다 해서 내가 엄청 기쁘지도 않을 것 같고. 칼라데아는 사 오지 마라 적어줄까?‘ 밸런타인은 누가 누구에게 선물하냐고 물어보는 반려인에게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는데, 진짜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성 발렌티노의 축일이란다. 축일이란 말만 들으면 왠지 종교적인 것 같은데 찬찬히 읽어보니 그런 것 만도 아니다. 로마제국의 어떤 군인들은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데 발렌티노라는 신부가 그것을 어기고 결혼 성사를 해 주다 사형당한 한 인간의 선함을 기리는 날이랄까. 초콜릿 유통사든 뭐든 마케팅에 크게 성공한 것인지 이 날에 뜬금없이 우리는 초콜릿을 사서 선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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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니라 PMS(월경전 증후군)가 그랬어요.신변잡기 2024. 2. 7. 01:13
하~~~~ 결국 또 또 또 이 거지 같은 기분의 나를 발견한다. 이때는 안 그래도 많은 것에 예민한 내가 곱절로 예민해져 있고 이것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분출’해 버리고 난 뒤에 드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스스로 부끄럽고 상대에겐 당연히 미안한 나를 … 이번달은 기분의 변화가 심한 것, 배란통이 있는 것, 우울하거나 잠을 못 자는 나의 상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억울해 죽을 지경이다. 같이 사는 젊고 큰 백인 남성인 반려인은 이런 죽일 놈의 주기에서 완벽하게 제외된 포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너무 부러운 순간이다. 나보다 육체적으로 모든 출력값이 뛰어나게 좋은 이 사람은 월경주기라는 것이 없다. 그뿐이랴 임신과 그에 따르는 위험과 몸의 변화 같은 걸 걱정한 적도 없겠지…. 하하… 나의 ”기분 나쁜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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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맛신변잡기/독일생활 2024. 2. 2. 19:51
카스? 아마도 카스일 거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어울려서 비밀스럽게 미성년자들을 받아주던 그 술집에서 마신 술은. 아마도 카스와 시원소주가 아니었을까? 맥주의 맛에 대해 적으려다 갑자기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 이것은 절대 내가 취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겨우 세 모금 마셨는걸. 중학생 때 그 폭탄주를 마시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장면전환이 너무 느려지는 그런 이상한 감각을 완전히 취했구나, 혹은 내가 아닌 나의 상태가 되는구나라고 착각한 (진실 일지도..) 나는 그 후 25살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 후는 읽는 분들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맥주는 20대 중 후반이 넘어가면서 까지도 쏟고 제대로 닦지 않으면 펍 바닥에 붙어 고약한 냄새나 풍기는 술도 물도 아닌 것쯤으로 생각했다. 맥주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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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영장의 한 청년과 김치신변잡기/독일생활 2024. 1. 31. 18:57
이 제목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것이다. 일단 나는 수영연습을 하고 있다. 함부르크에서 운영하는 어떤 수영장에 등록해서 매일매일 가는 클럽에 가입이 되어있다. 뭐 피트니스 같은 느낌이다. 한국과는 약간 다르게 구조요원(직원)만 상주하고 코스가 있을 때만 강사가 온다. 코스도 굉장히 적은 것 같은 느낌..? 여하튼 지금 다니는 곳은 새로 지어져서 쾌적하고 좋다. 수영을 꽤 자주 가면 계속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으나 나의 시간은 대단히 정해져 있지 않고, 웬만큼 독보적이지 않고서야 수모와 수경을 쓰면 거의 비슷해 보이기에... 딱 한 분을 제외하고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나는 좀 기억에 잘 남을 것 같기도 한 게 수영복 색이 다양하고 가장 특별한 것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