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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부르크 발렌타인의 풍경
    신변잡기 2024. 2. 15.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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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반려인의 물음에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꽃이 좋아 식물이 좋아? 맘속으로 생각했다 ’식물이 좋긴 한데 굳이 내가 써서 사 오라는 걸 사 왔다 해서 내가 엄청 기쁘지도 않을 것 같고. 칼라데아는 사 오지 마라 적어줄까?‘ 밸런타인은 누가 누구에게 선물하냐고 물어보는 반려인에게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는데, 진짜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성 발렌티노의 축일이란다. 축일이란 말만 들으면 왠지 종교적인 것 같은데 찬찬히 읽어보니 그런 것 만도 아니다. 로마제국의 어떤 군인들은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데 발렌티노라는 신부가 그것을 어기고 결혼 성사를 해 주다 사형당한 한 인간의 선함을 기리는 날이랄까.

    초콜릿 유통사든 뭐든 마케팅에 크게 성공한 것인지 이 날에 뜬금없이 우리는 초콜릿을 사서 선물한다. 이젠 향수나 액세서리 같은 걸 선물하기도 하지만, 거의 한국에서는 밸런타인이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인식되어 있으니. 나도 학창 시절에 꽤나 초콜릿을 사고 또 줬다. 초콜릿뿐이랴, 사탕 빼빼로 초코파이 등등 지금도 그럴까? 크리스마스, 부활절, 새해 등 자본주의 시스템에 따라 소비를 부추기는 날들은 이미 허다하게 많아 반려인은 그게 싫단다. 뭐 내가 사달라고 한 게 아니고 네가 며칠 전부터 계속 물어봤잖아 … 😅 나의 대답은 다이아몬드였다. 다이아몬드를 바라는 게 아니라 당연히 주면 받겠지만 (ㅋㅋ) 굳이 지금 필요하거나 받고 싶은 게 없어서 다이아몬드 반지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릴 했다. 결국 상관없으니 일이나 다녀오라고 하곤 앉았더니 괜히 스트레스받아하는 것 같은 느낌에 왓츠앱으로 “그냥 둬, 스트레스받지 말아 ~ ” 하니 오래전에 사뒀단다.

    두둥 ~

    뭘까. 서프라이즈라곤 잘 못하는 앤 데, 내 서른 살 생일에 작은 사진책을 만들려다 이모가 나에게 이르는 바람에 결국 들켰는데. 우리가 이 전에 밸런타인을 챙긴 적이 없어서 얘가 왜 이러나 싶다. 회사에서 좀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여자친구 준다고 선물얘기 해서 그런지…  참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는 건 오랜만이라 재미있다. 선물을 사뒀다고 하니 영 기대가 안 되는 것은 아니군 그게 뭐든 궁금하다 이게 선물의 묘미일까 …

    그러고 밖을 나왔더니 축축하고 칙칙하고 착잡한 함부르크에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하트가 둥둥 떠다니는 기분인 게 사람들이 모두 손에 꽃이나 작은 종이박스를 달랑달랑 들고 다닌다. 빨간 장미꽃다발을 들고 흐뭇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빛을 보노라면 내가 마치 그 꽃다발을 받은 것 만같은 행복한 기분이 된다. 아..? 꽃 배달하는 사람일까 저렇게 여러 꽃다발을 들고 있을 리가 그런데 저 눈빛은 음..?

    입술이 너무 부르터서 립밤을 하나 샀더니 드로거리에서 초콜릿을 하나 줬다. 별것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날이 있으니 소비와 지불한 가격에 상관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고마워진다. 오늘 집에 갔더니 사놨다는 것이 못난 아이비여도 반려인이 고심했을 시간과 마음에 고맙다. 짜식 잘 살아보자고. 나도 네가 읽고싶다고 얘기한 그 책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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